테오도르 아도르노: 진리, 가상, 화해 3

◎ 현대 예술의 영원한 탈주
자본주의 사회의 동일성의 폭력은 그것에 저항하는 현대 예술까지 포섭하려 한다. 자본주의 문화산업은 비판적인 작품이나 난해한 작품마저 체제 내에 포섭, 예술이 가진 비판적 잠재력을 무력화시키고 간단히 평균적 코드로 해석해 규격화한 후 대중에게 제공한다.
이 동일화의 강제에 대항하여 예술은 끊임없이 의미를 파괴하고 기대의 지평을 배반함으로써 사회와 구별되는 자신의 타자성을 주장한다. 사회가 행하는 동일화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예술은 급진적이어야 하고 끊임없이 실험하고 '탈주'한다. '예술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는 눈을 감고 이를 악무는 것이다.' 운명을 건 이 끝없는 탈주를 통해 예술은 비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일 수 있다.

◎ 새로움, 수수께끼
아도르노는 또 하나의 거대한 수용소인지 모를 자본주의의 '합리적으로 관리되는 비합리적인 사회'에서 더 이상 예술이 '아름다운 가상'일 수 없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가상'은 허구이고 기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예술은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추해져야 하는 것이다.
현대 예술에서의 중요함은 ‘새로움’이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더 좋은 것이다”

예술은 진리를 갖고 있으나 그 진리를 개념적으로 표현할 능력은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예술은 해석은 요구한다.' 즉 현대의 해석은 작품이 완성된 후에 사후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성립에 함께 참여하는 하나의 구성요소이다.
이 때 해석을 통해 우리가 답을 내는 순간 작품의 진리는 우리 앞에서 또 다시 모습을 감추게 되고 끝없는 숨바꼭질의 세계 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작품의 진리에 관한 최종적 해석을 거부하고 무한한 해석의 놀이를 풀어놓는 현대 예술의 구조를 아도르노는 '수수께끼'의 은유로 표현한다. 작품에 대한 최종적 이해, 궁극적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
미적 모더니즘을 긍정하는 아도르노의 이론은 곧 아방가르드의 강령이라 할 수도 있다.

◎ 아도르노와 벤야민
벤야민이 복제 기술을 통한 예술의 보급을 아우라의 붕괴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데 반해 아도르노는 복제 기술을 통한 예술은 지각을 퇴화시킨다고 부정했다. 즉 벤야민이 대중문화를 진보적이라고 칭송한 반면 아도르노는 대중문화의 상업성을 비판한 것이다.
아도르노의 사상 밑바탕에는 벤야민의 영향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나, 이렇듯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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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sla | 2007/10/12 23:33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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