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속 성장 시대는 끝났다 - 2편 세계경제

기본적으로 국가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세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미국처럼 소비를 많이 하던가

둘째는 과거 일본이나 요즘 독일, 한국, 대만, 싱가포르처럼 수출을 많이 하던가

셋째는 과거 소련이나 요즘 중국처럼 노동과 토지같은 생산요소의 막대한 투입과 자본의 투자로 성장을 하는 방법이다.


물론 어느 방법이 가장 좋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확실한것은 지금까지 취해왔던 방식이 벽에 부딪히고 더이상 먹히지 않을때는 과감하게 전략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어물쩍 넘어가버리면 결국 미래에 터질 폭탄의 규모만 더 키울뿐이니 말이다.

최근들어 많은 사람들이 중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이유는 바로 중국이 이런 모델 전환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셋째와 둘째 방식에 지나치게 치우친 경제를 첫째 방식, 즉 내수 중심의 경제로 돌려야 한다는건 중국의 각료들도 잘 알고 있고(후진타오, 원자바오 같은 중국의 집권층들은 기회가 있을때마다 내수 확대를 강조한다) 전 세계 경제학자들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의견이 엇갈리는 지점은 과연 중국이 이런 대전환에 성공할것인가, 그리고 그러지 못할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인가이다. 

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중국의 경제구조상 이런 성장 모델 전환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결국 언젠가는 큰 홍역을 앓고 본격적으로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게 될것이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자꾸 이 위기를 뒤로 미룰수록 차후에 중국이 치뤄야할 대가만 커질뿐이라는걸 중국 사람들도 알고 있어야 하는것이다.















경제 뉴스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최근들어 중국 경제 엔진이 식어가는 증상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게 매 분기마다 발표되는 GDP 성장률인데 최근 3분기에 발표된 중국의 GDP 성장률은 9.1%로 근 2년래 최저 수준이었다. 물론 9% 성장은 여전히 무시할수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문제는 이 수치가 시장 예상치 보다 낮은 수치였다는것이다. 그리고 중국 경제가 3분기 연속 둔화세를 보이며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는 점, 그리고 올해 4분기와 내년엔 7~8% 수준에 머물거라는 전망이 대세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어차피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는 피할수 없는 추세이니 그저 안전하게 '연착륙'만 시키면 되는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단순한 수치에 담겨진 의미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한다. 표면적으로는 유럽과 미국의 경기 침체와 거기에 따른 수요부진으로 중국의 대외수출이 감소, 성장률이 하락한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그렇다면 중국의 성장률은 더 떨어졌어야 하는것이 맞다. 그러나 경제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급감하지 않은것은 바로 중국경제가 중독되어있는 약물, 바로 투자 때문이다.


























위의 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중국의 GDP 성장률에서 소비부문, 즉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줄고 있고 대신 투자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기계설비나 부동산같은 고정자산 과잉투자 문제가 심각한데 2011년 상반기 고정자산 투자는 전년도에 비해 25.6% 증가했고 부동산만 따지면 32.9%나 증가했다. 결국 수출과 내수 감소로 인한 충격을 과잉 투자로 다 흡수하고 있는것이다. 물론 이건 건강한 성장 방식이 아니다.

북경대의 마이클 페티스 교수 말을 들어보면 현재 중국이 얼마나 기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의 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6%정도 됐습니다. 전례가 없는건 아니지만 매우 낮은 수치였죠. 세계 평균이 60~65% 정도이고 상대적으로 소비에 인색한 아시아 국가들이 50~55% 정도인걸  감안하면 중국은 이미 소비부문이 매우 취약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05년엔 40%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이쯤되자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중국 관료들은 내수 확대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파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 집권층이 드디어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으니 소비 비중이 40%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을거라 내다 봤습니다. 그러나 틀렸습니다. 2010년 현재 소비 비중은 34%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전시상황에서나 볼 수 있는 경제가 오늘날 중국에서 재현되고 있는겁니다."

그럼 도대체 중국 정부가 문제를 인식하고도 내수를 진작 못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그거는 지금의 성장 모델 자체가 악순환에 빠져있어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위의 표에서 빨간 그래프는 CPI, 즉 소비자물가지수를 뜻하고 파란 그래프는 대출 금리를 뜻한다. 09년 이후로는 CPI 상승률이 대출 금리보다 높았다는걸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최근 몇년동안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였다는걸 뜻한다. 이말은 결국 무엇인가? 한마디로 중국의 지방정부들이나 국유기업들이 저금리로 은행에서 마음껏 돈을 빌려다 써서 투자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중국 은행들은 어디서 돈이 나서 그렇게 대규모 대출을 해줄수 있는것일까? 당연히 중국인들이 은행에 예금한 자금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것이다. 이것이 중국의 저축률이 높고 내수가 취약한 이유이다. 중국의 GDP대비 저축률은 무려 52%에 달하는데 OCED 평균이 5%인걸 감안하면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 짐작할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 저축을 장려하는것도 있겠지만 중국의 취약한 사회보장시스템으로 인해 일반 중국인들 입장에선 저축 밖에 노후 대비 수단이 없는 상황이고 또 증권시장이나 금융상품이 발달안된 중국에선 딱히 국영은행 말고는 돈을 맡겨둘 곳이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저축률이 저리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오는 것이다.

중국의 높은 저축률이 내포하는 또 다른 의미는 바로 소비 부진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축을 많이 할수록 소비는 덜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소비력이 낮은 또다른 이유로는 낮은 임금이 있겠는데 수출경쟁력으로 먹고 사는 중국 입장에선 근로자들의 임금을 쉽사리 올려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저평가된 위안화도 수입 물품의 가격을 상대적으로 높게 만들어 중국인들의 구매력을 갉아 먹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어쨋든 현재 중국이 처한 딜레마는 이것이다. 내수를 늘리자니 저축과 저임금, 저평가된 위안화를 포기해야하고 이것은 곧 급격한 투자, 수출 위축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곧 급격한 GDP 성장률 하락을 뜻한다. 지방정부서부터 중앙정부까지 GDP 성장률에 목을 매달고 이번 분기에 얼마나 성장에 기여했는지가 승진의 최대 관건이자 국민들의 신임을 받는 유일한 수단인 중국 정계에서는 절때 받아들일수 없는 옵션인 셈이다.

그렇다고 지금 현재 모델로 계속 가자니 지나친 투자는 필연적으로 과잉설비와 자본배분의 왜곡, 부실채권 문제를 낳게 되고 같은 연장선에서 생산성이 저하 되어 GDP 성장률이 하락할수 밖에 없는것이다.

결국 이러나 저러나 앞으로 중국 경제는 하락세에 접어들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이 문제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다음 편에 한번 적어보도록 하겠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느끼는 이유는 부자유(不自由)를 형언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 슬라보예 지젝 철학




















“We feel free because we lack the very language to articulate our unfreedom.” 



철학자들의 글을 읽을때나 강의를 들을때는 바짝 긴장하고 있어야한다. 언제 뒤통수를 후려치는 희대의 명언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철학서적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지만 철학자들의 인터뷰나 강의는 시간날때마다 찾아서 보는데 그 중에서 단연 슬라보예 지젝이 인물이라면 인물이다.





















"뭐 좀 물어볼게요. 만약 당신에게 딸이 있다면 딸이 이렇게 생긴 사람하고 같이 영화보러 가는것을 허락하겠어요?" 

이런 자학개그에도 능한 지젝이지만 사실 미모의 란제리 모델 출신(아날리아 요니)하고 결혼한 꽤 능력있는 남자이다.



















지젝의 강의를 듣다보면 속사포 같이 말을 뱉어내는 그의 입보다 오히려 코에 더 눈길이 갈때가 있는데 그 이유는 말 중간 중간마다 여지없이 코에 손을 갖다대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지젝이 1시간 20분 남짓한 강의를 하면서 과연 코를 몇번 만지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세보는 동영상이 있는데 결과는 무려 365번이었다. (동영상 제작자에게 진심으로 존경의 의사를 표한다)

그 외에도 특이한 버릇이 많은 사람인데 예를 들어 하루 12시간 이상 글을 쓰지 않으면 불안에 떠는 강박증이 있으며 글을 쓸때에는 "지금 난 글을 써야 한다" 라는 중압감이 싫어 그냥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줄줄 적어낸 다음 마지막 단계에 가서야 좀 가다듬고 편집을 하는것으로 자기 글을 완성한다고 한다. 이런식으로 하면 글 쓰기의 부담감에서 벗어날수 있다나 뭐라나...  또 영어로 말을 할때 so on, so on 이라는 어구를 자주 남발하는것도 재밌는 특징이다.




















사실 지젝은 철학자보다 정신분석학자 명칭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실제로 주 전공이 라캉의 정신분석학이기도 하고 특정 사회현상을 분석할때에도 정신분석한적 접근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이후로 정신분석학은 죽었다는 말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한번쯤은 배워볼만한 분야인거 같다. 문제는 과학에서 요구하는 엄격하고 실증적인 증명과정이 결여된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정신분석학도 자칫하면 우스꽝스러운 길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지젝의 그 유명한 '변기'의 예를 들면, 미국·독일·프랑스의 변기구조가 다른 것은 각각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했기 때문인데 독일의 변기는 변이 떨어지는 걸 앞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이는 독일인의 사변적, 형이상학 태도를 반영한 결과라는 얘기다. 또한 프랑스 변기는 그와는 반대로 구멍이 뒤쪽에 있어 물을 내리자마자 대변이 눈앞에서 사라지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프랑스인들의 "혁명적 조급성(revolutionary hastiness)" 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변기는 이러한 두 가지 방식의 통합형, 혹은 절충형이어서 앵글로색슨의 온건한 공리적 실용주의의 표상이라고 한다.

나름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어딘가 좀 작위적인 면이 느껴지는건 어쩔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가끔식 오버를 하긴 하지만 지젝만큼 다양한 사회 현상들과 인간 심리를 날카롭고 통쾌하게 분석해낼수 있는 이도 드물다. 재밌는 점은 그는 아직도 자기 자신을 좌파 공산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회가 될때마다 "20세기 사회주의는 인류 역사상 최대 실패작이었고 그 시절에 대한 어떤 환상도 없다" 고 강조한다.

























많은 이들이 철학의 유용성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다. 도대체 그런 말장난만 하는 학문 배워봤자 뭐하나. 어디 쓸데 있다고.

하지만 지젝은 이런 물음에 명쾌한 해답을(아이러니하게도) 내놓는다 .

"철학은 어떤 질문에 올바른 해답을 제시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것은 바로 '올바른 질문'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틀린 정답만이 존재하는것이 아닙니다. '틀린 질문'도 존재합니다. 철학은 바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던지는 그런 틀린 질문들을 재정의(redefine)하여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도와줍니다. 가령 '자유'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 것인가', '인간에게 자유의지란게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좀 더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은 'A가 자유롭다고 할때 그 '자유롭다'는게 과연 무엇을 뜻하는것인가?' 라는 물음입니다".























비슷한 얘기지만 지젝의 주요 관심사는 한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우리의 무의식에 영향을 끼치며 그런 무의식이 헐리우드 영화나 일상적 대인관계등 사회문화의 각 영역에서 어떤 모습으로 발현되냐는 것이다 (그를 처음 스타덤에 오르게 해준 것도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이라는 책이다). 가령 그는 "이데올로기는 진리 가치(truth value) 차원에서 대응해선 안된다" 라고 하면서 밑의 예시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전달한다. 

"우리가 1937년 독일에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전 유태인을 혐오하는 나치이고 당신은 착한 진보적 좌파입니다. 당신은 나의 반(反)유대주의는 그저 편견일뿐이고 실제 유대인들은 내가 생각하는거처럼 나쁜사람들이 아니라는것을 나에게 설득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 노선을 택하는 순간 당신의 영혼은 악마에게 넘어가고 게임에 져버린 것입니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과연 유대인들중에 나쁜사람들이 한명도 없었을까요? 물론 있었겠죠. 당시 유대인들중에는 정말로 독일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악덕 기업주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독일 여자들을 채가고 있다는 당시의 소문도 일정 부분은 사실이었을 겁니다. 이런 부분적 요소만으로도 나치들은 유대인이라는 집단 전체에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기에 충분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당시 나치들이 유대인들에 대해서 했던 말들이 과연 참인가 거짓인가라는 식의 접근은 무용지물인 셈입니다. 이데올로기는 이런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깐요. 한번 더 극단으로 밀고 나가봅시다. 그 당시 나치들이 유대인들에 대해서 펼쳤던 주장들이 모두 다 사실이라고 가정해 보죠.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지만 정녕 다 참이었다 하더라도 나치들의 반(反)유대주의 이데올로기는 잘못됐다는겁니다. 왜냐하면 이델올로기란 그것의 진리 가치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치의 예를 다시 들자면, 당시 나치즘의 세계관을 유지하기 위하여 왜 유대인이라는 희생양이 필요했는가, 이게 핵심인 겁니다"

중국의 유령 도시




예전에 다음팟에 올렸던 중국의 건설 거품 실상을 보여주는 다큐인데 생각보다 그 여파가 꽤 컸던듯 흠..

중국의 고속 성장 시대는 끝났다 - 1편 세계경제

아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명제가 가장 뚜렷하게 적용되는 분야는 경제가 아닌가 싶다. 그 만큼 과거의 잘못과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며 '이번에는 다르겠지' 식의 근거없는 낙관주의가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팽배해 있다는 뜻이다.



마이클 페티스(Michael Pettis) 라는 사람이 있다. 중국 최고 비즈니스스쿨인 북경대 광화관리학원(光華管理學院) 교수로 재직중이며 중국 학계에 뿌리내린 몇 안 되는 파란 눈의 학자다. '닥터둠'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가 중국 경제 전망에 대한 조언을 얻고 싶을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며 월가에서 인정하는 최고 중국 소식통이라 한다. 그만큼 중국 경제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깊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그가 미래 중국 경제 성장률이 3~4% 수준에 그칠거라 예상하고 있다. 먼 후일 얘기가 아니라 바로 몇년 후부터 중국이 본격적으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암울한 전망을 하고 있는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이 한줄로 간단하게 표현된다.


"지나치게 투자(투입)에 의존하여 성장하는 경제는 언젠가는 반드시 고꾸라진다"


이는 사실 그다지 놀라울것도 없는 주장이다. 역사가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페티스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고도성장은 일각에서 주장하는것과 같이 새로운 경제 발전 모델, 일명 '베이징 컨센서스'의 등장을 알려주는것이 아니라 (이에 관련해서 예일대의 중국계 경제학자인 천즈우는 "중국식 모델은 없다" 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과거 수많은 나라들이 채택했었던 경제 성장 전략(정부 주도의 투입 중심 성장 정책)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결과에 불과하다.

그 시초는 1820~30년대 프랑스라 할 수 있는데 당시 경쟁국이었던 영국이 산업혁명에 성공하여 저 멀리 치고 나가자 프랑스는 그런 영국의 성공원인에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서 연구를 하였고 결국 영국이 경제적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들 (economically viable projects)을 선별하여 집중 투자한 결과 그런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어낼수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1840년대 초, 프랑스는 특정 금융기관을 설립하게 되는데 이 기관이 하는 일이 바로 중산층들이 예치한 자금을 경제적 가치가 큰 사업부문(철도, 운하 등등)에 집중 투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델은 이후에 다른 국가들에 의해서 수도 없이 차용되게 되는데 19세기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도 이 발전모델을 통해서 일정 기간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일구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이 모델을 통해서 발전한 모든 국가들이 일정 지점에 도달해서는 더 이상 성장을 하지 못하고 주저 앉고 말았다는 것이다. 1950년~60년대에 이 모델을 가장 확실하게 수용한 국가는 바로 소련이었다. 흥미로운것은 당시 미국 전역에서 벌여졌던 논쟁의 주제가 "과연 소련이 미국을 따라잡을것인가" 가 아닌 "언제 소련이 미국을 따라잡을것인가" 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당시 소련은 경제적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고 적어도 20세기가 가기 전에 소련이 미국을 제치지 못할거라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70년대에 들어 소련의 경제성장률은 한풀 꺾이기 시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이다. 

당시 소련말고도 또 하나의 경제 기적이 있었으니 바로 브라질이다. 6~70년대 브라질은 연 10% 이상의 고도 성장을 구가하고 있었고 그런 브라질이 채택했던 모델 역시 소련과 비슷한 "정부 주도의 투입 중심 성장 전략" 이었다. 하지만 결국 브라질도 80년대에 접어들어 성장률이 꺾이기 시작하고 그 이후 오랜기간동안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원조 "잃어버린 10년"을 겪게 된다. 


그리고 가장 최근이면서 가장 유명한 예로는 일본이 있다. 5~60년대 일본 역시 10% 이상 고속성장을 하였고 7~80년대에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한때 미국 GDP의 2/3까지 쫓아갔던적도 있었다. 


당연히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어 질수 밖에 없었는데 당시 미 학계와 언론에서는 미국은 이미 저물어가는 국가고 조마간 일본이 패권을 거머쥐는 '팍스 자포니카' 시대가 도래할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당시 분위기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강대국의 흥망", "넘버원 일본한테 미국이 배워야 할점" 같은 그 시기에 출판됐던 서적들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강대국의 흥망은 예일대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의 저작으로 당시 국제정치학계의 주류의견을 반영한 책이었는데 내용인 즉슨, 미국은 역사의 큰 흐름에 따라 쇠퇴하는것을 피할수 없고 그 공백을 일본이 메꾸게 될것이며 그것은 곧 힘의 균형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될것이라는 것이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지 않은가?)

하지만 일본은 91년 본격적으로 버블이 붕괴되면서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하게 된다 (20여년동안 연평균 0.5%가량 성장).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것은 바로 대가 없는 무조건적인 성장은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 현재와 같이 무리하게 생산요소의 투입, 특히 부동산같은 고정자산 부문의 투자에 의존하여 억지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정책을 지속한다면 언젠가는 정말 크게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앞에서 언급한 고성장을 구가하다 순식간에 무너진 국가들의 공통점이 바로 끝에 가서는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것일까?

마이클 페티스는 막대한 국가부채는 이 성장모델에 의해 성장하는 국가들이 반드시 겪게 되는 현상이며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과잉 투자는 반드시 자본의 왜곡된 배분(misallocation of capital)으로 이어질수 밖에 없는데 그말은 즉 투자수익률이 마이너스인 프로젝트에까지 자금이 흘러들어가 결국 그 사업을 주도한 지방정부나 기업은 차후에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소리이다. 

이런 자본의 왜곡된 배분 문제는 미국의 전략전문가인 조지 프리드먼이 그의 책 "넥스트 디케이드" 에서 일본을 예로 들어가며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있다.
 
“예금으로 모인 돈은 정부에 의해 도시의 거대 은행을 거친 후, 자금은 다시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기업에 수혈됐다. 바로 이 저렴한 대규모의 자본동원이 1970-1980년대 일본 고도성장의 핵심 배경임은 물론이다. 당시 미국의 이자율이 대략 두 자리 수를 기록하고 있는 동안 일본기업들은 5% 이하라는 아주 저렴한 자본을 활용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돈이 진정으로 이익이 나는 분야에 흘러들어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뒤집어 보면 당시 일본기업의 이윤은 값싼 자본의 추가 투여가 가져다 준 양적 팽창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added margin provided by cheap money). 이익률 저하는 기업이 더 많은 돈을 빌려 투자해야만 하는 상황을 의미하고, 나아가 빌린 막대한 돈을 되갚을 수 없는 기업 부실을 뜻한다.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시점 이전부터 오랫동안 서방 전문가들이 눈치 채지 못한 구조적 왜곡 현상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위 문단에 '일본'으로 돼있는 부분을 '중국'으로 대신하면 바로 오늘날 중국 경제가 봉착한 문제점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 난관을 돌파하려면 투입중심 경제에서 내수중심 경제로 전환하는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는 큰 문제점이 두 개가 있다. 첫째는 역사적으로 미국 정도를 제외하고는 성공적으로 이 전환을 수행해낸 국가가 거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중국이 현재 채택하고 있는 경제성장 방식이 바로 내수를 억누르고 수출과 투자에 힘입어 성장하는 방식인데 이미 너무도 많은 중국의 집권층들과 이익 집단들이 이 체제하에서 혜택을 보고 있어 성장 모델을 바꿔나갈 만한 동기, 즉 충분한 인센티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때 이 상태로 계속 가면 중국의 경제는 반드시 큰 위기를 맞을수 밖에 없지만 지금 현 시스템 상에서 혜택을 보고 있는 중국의 관료들과 국유기업(SOEs)들 같은 존재 때문에 중국은 아마도 근시일 내 경제 성장 모델 전환을 이루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럼 중국이 억지로 내수를 억눌러 가면서까지 기형적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종국엔 어떻게 될것인가? 그 문제는 다음글에서 다루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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